메세지/담화문
2025년 성탄 메시지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루카 2,14)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그리고 우리나라 영토, 영해, 영공은 물론 해외 파병지에서도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든 장병들에게 성탄 인사를 전합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이 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세상 한가운데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이 역설적인 사건은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의 큰 신비입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성탄 대축일 밤 미사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들었던 이들이 등장합니다.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었습니다. 구세주 탄생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이들이 성전의 사제들도 아니고, 유명한 예언자나 율법교사도 아닌, 이름도 모르는 목자들이라는 점에서 하느님 사랑의 보편성을 떠올려 봅니다. ‘보편적’이란 말은 우리 천주교의 본래 이름, 가톨릭(catholic)의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그 무엇으로도 차별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대하며 사랑하는 것은 가톨릭의 근본정신이며, 아울러 이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목자들은 놀라운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지만 그 두려움은 곧 기쁨이 되었고, 자신들이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습니다.(루카 2,20 참고) 그런데 구세주의 탄생이 모두에게 기쁨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경쟁자의 등장으로 착각한 헤로데는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란 것은 물론, 심지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이는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마태 2장 참고) 헤로데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을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고 거룩한 것이 있더라도 내 안에 욕심이 가득하다면 결코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탄이 나에게 진정 큰 기쁨이 되려면 내 욕심을 내려 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아야 합니다. 우리는 4주간의 대림 시기 동안 고해성사 및 자선 실천 등으로 성탄을 성실히 준비했으니, 이제는 성탄의 기쁨을 가정과 군에서, 사랑과 평화를 담은 말과 행동으로 나누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작은 가정교회’를 이루는 혼인성사의 해”
2026년 우리 군종교구는 혼인성사의 신비를 묵상하는 여정을 걷습니다. 혼인성사를 통해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둘이 한 몸이 되고 성가정으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성가정의 원형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이 이루셨던 가정은 어떤 면에서는 불행한 조건들을 참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그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머물 곳이 마땅하지 않아 구유에 눕혀야 했으며,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불행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가정이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을 가운데에 모시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어떤 풍파와 시련이 닥치더라도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행복 안에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과 국군장병 여러분!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국토방위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장병 여러분이 있었기에 오늘 이 밤 구유 앞에서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비추는 참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께서 보여 주신 겸손과 사랑의 삶을 우리의 일상에서 오롯이 살아가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가정과 부대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부활 메시지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알렐루야, 알렐루야!”(시편 118,24)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돌무덤의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도 부활의 은총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알렐루야!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에 살던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 그리고 오빠 라자로를 친구처럼 대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자로가 병을 앓다 죽게 되었고,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을 때 예수님은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하며 죽음 앞에 무력함을 고백하던 이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하고 말씀하시며 라자로를 소생시키셨습니다.
이후 라자로가 얼마를 더 살았는지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분명 라자로는 예수님을 공경하며 따르다가 결국 육신의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가 건강히 오래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원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7)
부활 대축일의 복음은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빈 무덤’ 안에서 수의로 쓴 아마포와 잘 개켜진 얼굴을 쌌던 수건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을 믿었다고 전해 줍니다. 이후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39-40)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에게 “이리 나와라.”라고 명하심으로 소생시키셨다면, 하느님께서는 돌무덤에 묻힌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시어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 부활을 처음으로 드러낸 표징입니다.
그런데 라자로와 예수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라자로가 얻은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잠시 연장된 소생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모두가 간절히 염원한 영원한 생명, 구원의 완성이었다는 점입니다.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안타깝게도 우리는 불안한 세계 정세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테러와 전쟁, 자연재해와 기근, 각종 사건과 사고 소식은 우리의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연일 세계평화를 말씀하시며, “하느님을 부르는 자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감히 죽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려 쓰려한다. 그러나 신은 어둠의 편에 서실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대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통해서 부활의 영생을 선물로 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인간의 바람이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부활의 희망으로 우리는 현세의 고통을 극복할 힘과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감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이르십니다.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재회 장소로 지목하신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바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공생활의 주무대였습니다. 그곳에서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2)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어 잔치의 기쁨을 더하시는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산상설교(마태 5-7장)를 통하여 참 행복을 전파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제자들, 메시아를 바라던 백성들 사이에 사랑이 시작되고 꽃을 피운 장소였습니다. 하느님과의 만남과 영적 체험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매 주일 말씀을 듣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바로 이 성당이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생활관, 각자의 가정, 또 주특기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자리가 바로 우리의 갈릴래아입니다. 그곳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당신의 부활을 드러내는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곳에서 주변의 지친 이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건넬 때 우리 또한 영적 기쁨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의 파수꾼으로서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군인이 됩시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선행이 결실을 맺기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부활의 빛과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주하는 각자의 갈릴래아에서 늘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군인이 될 것을 다짐하며, 서로를 격려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이 전후방 각지에서 수고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제58회 군인주일 담화문

오늘은 58번째로 맞이하는 군인 주일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국토방위에 헌신하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모든 장병의 노고에 깊은 위로와 감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전후방 각지에서 헌신적으로 사목하시는 군종사제들과 협력자 수녀님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종교구의 든든한 버팀목인 군종후원회 회원을 비롯한 모든 신자분의 기도와 물적 후원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1968년도 주교회의에서 군인 주일을 제정할 당시, 군종신부단의 총재셨던 故 지학순 주교님께서는 ‘군 사목의 중대성을 자각하자’라는 내용의 글을 ‘가톨릭 시보’에 기고하셨습니다. “군종신부로 군대에 가봤자 일만 고되고 딱딱한 규율 속에 사니 재미도 없고, 수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또한 교회 당국의 후원 면에 있어서도 여러 어려움을 겪으니 고달플 수밖에 없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군종신부 한 사람이 잘만 활동하게 된다면 많은 병사에게 신앙적·인격적으로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군 사목을 잘할 수 있도록 신자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70년대 초에 시작한 ‘전군 신자화 운동’은 창군 이래 최초의 신앙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모든 장병이 자기가 원하는 종교 하나씩을 선택하여 신앙을 통해 군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우리 천주교 역시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여, 1970년부터 1973년까지 6,500여 명의 세례자를 배출하였고 이 시기에 천주교에 입문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들은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의 큰 재목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열매를 기억하며 군종사제들은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힘을 얻어 오늘도 장병들의 영적 선익과 꾸준한 신앙생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야전병원’(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4월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야전병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전병원이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돌보듯이,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치유하고 위로하는 곳이 우리 교회라는 뜻입니다.
군종교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재 군종사제들은 101명이며, 전후방 각 부대는 물론 레바논(동명)과 남수단(한빛), 그리고 소말리아 해역(청해) 등 해외 파병지에서도 사목합니다. 장병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그들의 정신적·영적 고단함을 덜어주고 격려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런데 젊은 병사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군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군종사제들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병사들의 ‘영적 의사’로서, ‘야전병원’인 교회를 굳건히 지켜 나갈 것입니다.
환대와 공감으로 함께하는 군종사제의 삶
여러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무종교인과 종교인의 비율을 6대 4 정도로 추정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종교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군종교구 세례자 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에 세례자 수는 1만 4천여 명이었으나 팬데믹 영향을 받지 않은 작년에는 8천8백여 명이었습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본다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선교의 하향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종사제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의 사목을 모색합니다. 어떤 때는 사제로, 어떤 때는 삼촌으로, 어떤 때는 형이나 오빠로 장병들 곁을 지키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젊은 감각으로 다가가려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주일에 성당에 오는 이들을 따뜻이 환대하고 평일에는 장병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 나섭니다.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고민도 나누고 때로는 함께 아파하고 격려합니다. 환대와 공감이야말로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신”(루카 4,40) 예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알리고 전하여라. 땅 끝까지 퍼뜨려라.”(이사 48,20)
군종교구는 지난 4월 1일부터 3일까지 꽃동네에서 ‘제1회 군종교구 청년대회’를 개최하여, 참가한 500여 명의 청년들이 깊은 감동과 신앙의 성숙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전역 후,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꼭 참가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군종교구는 특히 병사들이 군 복무 중에 적어도 한 번은 참가할 수 있도록 청년대회를 매년 개최할 예정입니다. 군 복무 중 뜨겁게 체험한 신앙이 전역 이후에도 이어져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쉬는 교우와 비신자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선교에도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군 복무를 하는 젊은이들은 바로 여러분의 아들, 딸들입니다. 이들이 군 생활을 보람되게 해나갈 수 있도록 군종사제들은 늘 동행할 것입니다. 특히 이들을 신심 깊은 하느님 자녀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이 거룩한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끊임없는 기도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군종사제들은 이러한 기도와 지원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장병들을 이끌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실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