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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성탄 메시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 1,9)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루카 2,14) 하늘의 군대가 탄생하실 구세주께 드리는 찬미노래입니다. 추운 날에 영공과 전후방 각지에서 경계근무를 수행하는 병사들과 비좁은 배 안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간부/수병들 안에 아기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 오늘 이 밤,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 축하 인사를 교구민 모두에게 전합니다.

아울러 성탄의 기쁨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어둠은 온데간데없이 환한 세상이 옵니다. 예수님 탄생의 은총에 힘입어 분쟁과 갈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광명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경사스러운 이 밤에,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상처...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사상자와 후유증을 남기고 종식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육체적·정신적 상처와 더불어 인간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경제적 빈곤층이 발생했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참례자 인원이 제한된 미사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SNS와 종교 채널을 통한 방송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제한적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발병 초기, 미사가 중단되었을 때의 안타까움은 서서히 신앙의 나태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예전의 신앙생활로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군대 내의 종교활동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최소한 주일 미사 봉헌에 충실하였던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주일이나, 오늘과 같은 대축일에 성당 좌석이 병사들로 꽉 찼던 것과는 달리 듬성듬성 비어 있는 장의자를 보면 씁쓸한 마음입니다.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우리 ‘마음 안에 공간’도 더욱 커졌습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35,000여 명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사별(死別)을 했으며, 잘 나가던 사업을 하루아침에 접어야 했던 가장은 좌절과 허탈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불투명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비관하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양극화되어 가고, 세계는 분쟁과 전쟁의 화염 속에 허무와 고통을 느끼고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자신과 가정, 부대, 사회, 세상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지금 우리 안에 필요한 것은, 행복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한다.”(루카 2,10)


우리를 좌절시키고,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미래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 오면 인간은 꼼짝달싹 못 하고 주저앉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가던 2020년 3월 27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 서시어 ‘특별 기도회’를 주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그날 마르코복음 4장의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기적 사화’를 들려주시며, “희망을 품기 위해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신앙의 힘으로, 이는 우리를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며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고 덧붙이셨습니다. 큰 풍랑 때문에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너무 심각해하며 두려움에 가득 차 그 안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께 우리의 앞날을 봉헌하고, 그분 능력에 의지하며 기도합시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이사 9,2)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언제고 어둠은 걷히게 될 것입니다. 어둠과 암흑 속에 살던 백성에게 빛이 비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즐거움, 기쁨이십니다. 그분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은 어둠을 비추시는 ‘빛, 광명’이십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시는 성령님은 고통 속의 인간을 위로해 주시며, 사랑의 하느님과 빛이신 예수님은 연결시켜 주는 ‘고리’이십니다.

나자렛이라는 작은 고을에 살던 처녀 마리아의 태 안에 구세주를 심어주신 분이 바로 사랑의 매개 역할을 하셨던 성령님이십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구세주 잉태 소식을 전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좋으신 아버지이시지만 눈으로 뵈올 수 없었던 하느님께서 인성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는 그분을 뵈옵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선물 곧 ‘빛과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성탄을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빛을 위한 ‘2024년도 사목지침’ -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의 해’


저는 지난 대림 제1주일에 2024년도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2024년도는 개인의 신앙 성숙과 세상의 화해를 위한 고해성사에 중점을 두며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나의 영혼이 성찰과 통회를 통해 변화될 때에 우리가 몸담은 가정, 부대, 사회와 세상이 바뀝니다. 우리 안에 어둠이 빛과 광명으로 변화됩니다.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고해성사의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유혹과 죄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를 복원하고 다시금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참빛을 맞아들일 때에 진정 믿는 사람다운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빛을 품어야만 그 빛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성탄의 기쁨과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참빛’이 우리만의 자리를 넘어서서 모든 자리에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개인과 가정 문제로 번민에 싸여있는 전우들에게 탄생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격려가 가득하시길 기도합시다. 특히 앞서 말씀드렸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무고하게 희생되는 자들과 질병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풍성히 내려 주십사 마음을 다해 기도합시다.

기도는 어떤 불가능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어떤 유형의 기도도 하느님께 다다라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꼭 해야 하는 사랑의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교구민 모두가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충만히 누리시고, 이 선물과 기쁨을 이웃과 나누시기를 기원합니다.


2023년 주님 성탄 대축일

교구장사인

2024년 부활 메시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요한 20,1)


알렐루야. 알렐루야!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시어 돌무덤에 묻히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우리에게 빛과 구원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군종교구민 여러분께 부활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전해주신 평화의 선물이 분쟁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상처로 얼룩진 형제자매님들의 마음에도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요한 20,2)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와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리려고 무덤에 갔습니다. 용감하고 신심 깊은 여인들은 향유를 예수님 시신에 발라 드림으로 마지막 예를 갖추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무덤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이 도착했을 때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은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군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안타까움과 슬픔 속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 간절함에 감동되셨을까요? “마리아야!”(요한 20,1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녀를 부르십니다.

‘빈 무덤’의 목격과 증거는 우리 부활 신앙의 근간입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만약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분의 지상 33년의 삶, 특히 공생활 3년간의 말씀과 행적은 세기의 성현 중 한 분의 것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종 한계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인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증명된 것입니다.

볼 수 있고 증명된 사실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육신의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 신앙은 허황된 주장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설이 아닌 실재이며,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진리를 믿는 이들이며, 증인들입니다.



부활을 살기 위한 ‘줄탁동시(啐啄同時)’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부활을 ‘내가 사는 것’입니다.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어미 닭은 밖에서 쪼고, 병아리는 안에서 쪼며 서로 협동하여 일을 순조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피나는 영적 노력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영적인 것을 선택해 나가고, 어둠보단 빛으로 나아가고자 힘씀으로써, 현실 속에서 부활을 체험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루카 24,6)


‘줄탁동시’의 자세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천사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서 뵙게 될 것이다.’(마태 28,7 참조)라고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사실 이곳은 이방인들의 지역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갈릴래아 지방의 작은 마을 나자렛에서 30년을 지내셨고, 공생활 3년을 갈릴래아 호수를 근거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신 후, 갈릴래아로 나가시어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선포하시며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어부로 살아가던 이들을 포함하여 부르심을 받은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하실 정도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반대자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으시며 사명을 수행하신 곳이 ‘갈릴래아’입니다.

그러나 갈릴래아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랑이 싹튼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제자들과의 해후의 장소로 정하신 것 같습니다. 스승을 잃고 상심하여 방황하던 제자들 역시 스승님과 함께했던 지난 3년을 회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갈릴래아를 향해 발길을 옮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로 나아갑시다.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의 ‘갈릴래아’는 어디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자리입니까? 그 갈릴래아에는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갈릴래아와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함께 있습니까? 만일 나의 갈릴래아가 예수님의 갈릴래아와 멀어져 있다면 우리의 발길을 새로이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의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겨울의 맹추위 속에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새 생명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부패로 악취를 풍기는 무덤이 새 생명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빈 무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 천상 것을 추구하는 신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갈릴래아’를 자주 찾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인사를 전하며, 여러분의 가정과 부대에 새 생명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주님 부활 대축일

교구장사인

2023년 제56회 군인주일 담화문

군인주일 담화문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시편 33,5)



오늘은 제56회 군인 주일입니다. 올해부터는 교구장님들의 동의하에 ‘군인 주일’ 행사를 10월 첫 주에서 둘째 주일로 이동하여 지내게 되었습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되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군인 주일을 맞이하게 되어 무척 기쁜 마음입니다. 군인 주일을 맞이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국토방위에 수고하고 있는 국군 장병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군인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신자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7월에 발생한 ‘극한 호우’는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남겼습니다. 제방이 무너지며 터널 안으로 부지불식간에 밀려든 강물에 생명을 잃은 분들의 슬픈 소식은 아직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특히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해병대원의 죽음은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어진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수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수많은 육·해·공·해병대 장병들이 수재민을 돕고자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쓰고 수해 현장에서 봉사하였습니다. 이렇듯 군인은 나라의 천재지변과 여러 비상 상황에 어느 곳이든 제일 먼저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뻗치며, 평화의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군종교구도 피해지역의 복구를 돕는 병사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군종신부들은 간식을 준비하여 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병사들을 위문하며 고통에 동참하였습니다. 재난의 복구를 위해 신자 여러분들께서도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격려와 힘을 보태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루카 15,4)



한국천주교회의 신자통계에 보면, 2012년 20∼24세 남녀 영세자는 전 교구를 합해 30,000여 명이었고, 그중 군종교구에서 세례를 받은 인원은 27,000여 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보면 100명 중에 87명이 군 생활 중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2년도에 군종교구에서의 세례자 수는 1,700여 명으로 급감하였습니다. 군대 안에서 영세자가 급감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의 여파였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향한 젊은이들의 냉담함과 과거와 비교해 다양하게 보낼 수 있는 자기 계발의 시간, 휴대전화 사용 등이 안타까운 현실의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군종신부들은 예전의 종교활동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하며 ‘찾아나서는 사목’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선사해야 합니다. 성당에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중장년 신자분들이 대다수인 교회의 현재 모습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 치빌타 가톨리카’와의 인터뷰, 2013) 상처를 치유하고 믿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이 감싸주는 것이 사목자의 역할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고,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



올해 저의 사목지침은 ‘선교의 열매, 세례성사!’입니다. 그간 한국천주교 안에서 청년 영세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군종교구 영세자 수가 줄어들었음에도 교회 문을 두드리는 장병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건상 장기간 교리교육을 할 수는 없지만 군종신부, 수녀, 군선교사들은 열성을 다해 이들을 가르치고 주님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실을 맺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고 믿으며, 군대 안에서 성실히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비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이유에서 신앙생활을 잠시 ‘쉬고 있는 신자들’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본당 사목방문을 할 때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쉬는 신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CBCK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주일미사 참석률은 43%였던 것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에는 11.8%까지 떨어졌습니다. 군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젊은이들로 구성된 군대 안에서 병사들을 위한 ‘영적 돌봄’은 무척 중요합니다. 때문에 오늘도 군종신부들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부대와 훈련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젊은 병사들은 우리나라와 한국천주교회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이사 48,2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의 기도와 지원이 없다면 군종사목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이자 형제, 자매인 장병들이 건강히 군 복무를 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앞에서 이끌어 주는 것은 군종신부들의 책무입니다. 아울러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와 물적 지원은 군종사목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간 여러분들의 한결같은 사랑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홍수와 태풍으로 심신이 고달프실 여러분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 드립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그리고 그분은 “자애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가 병사들과 여러분 가정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 형제들이 있는 부대에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2023년 10월 8일

교구장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