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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성탄 메시지


“오늘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루카 2,11)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우리가 기다려 온 구세주께서 오늘 기쁜 이 밤, 우리 곁에 탄생하셨습니다.

전후방, 영공과 영해 그리고 해외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모든 장병들에게 성탄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군종교구 가정의 한분 한분에게도 아기 예수님 탄생의 축복이 가득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곁에 태어나신 구세주 아기 예수님께서 죄와 삶의 고통에 짓눌려 있던 인류에게 구원의 기쁨을 가져다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오늘 우리 가운데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시라고 엄숙히 선포됩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신 이 신비를 유한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다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시고, 영원하신 분이 시간 안에 오신 강생의 신비를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믿고 깨달으려 할 때만 가능하며, 주신 선물을 감사로이 받겠다는 열린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라고 복음사가 요한은 전합니다. 인간의 교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린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됨으로써 죄와 죽음, 고통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사랑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죄와 죽음의 구렁텅이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대속의 제물로 삼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원의는 말씀이신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신비로운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다.”(필리 2,7) 성자의 탄생은 하느님 자기비하와 사랑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죄와 고통과 죽음에 시달리던 인류에게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들판에 살면서 양 떼를 지키는 순박한 목자들 둘레에 빛이 비추어지며, 두려움에 싸인 목자들에게 천사가 전한 말이었습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1-12)

기원후 5세기의 성 레오 교황은 성탄절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으니 기뻐합시다. 죽음의 공포를 소멸하시고 영원한 약속으로 인해 기쁨을 부어 주시는 생명께서 탄생하신 이날 슬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 기쁨의 참여에서 아무도 제외될 수 없으며 기뻐할 이유는 모두가 다 지니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생명에로 부름받았습니다.’

구세주의 육화로 인한 ‘기쁨’은 그리스도교 정신의 핵심이며, 궁극 목표입니다.

오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이사 9,1-2) 신앙의 기쁨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이유이며, 우리 신앙 여정의 목적입니다.



“라마에서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예레 31,15)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양국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대략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와 이스라엘의 전쟁 역시 수많은 사상자와 피난민을 발생시키며 지금껏 총성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세계 각 지역에서 분쟁과 테러와 전쟁의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역시 격동의 정치적 혼란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하느님을 적대시하는 교만이 존엄한 인간의 권리를 유린한 채 서로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설정한 정의의 잣대로 집단을 이념화시키고, 공동체를 양분합니다. 더 이상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내 주장과 생각만을 내세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는 말씀이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말씀은 고리타분한 성경 속의 말씀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를 풀어나가야 할지 답답함을 느낍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2025년 정기 희년을 맞아 교황님께서 내려주신 주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1티모 1,1)를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덧붙여,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은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와 바람을 저마다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 희년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되살릴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바라라. 네 마음 굳세고 꿋꿋해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 27,14)


앞이 분간되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촛불이 밝혀지면 어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광명의 세상이 됩니다. 오늘 이 밤 우리를 찾아오신 아기 예수님은 바로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분은 어둠을 없애시고 광명과 빛을 선사하십니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천사들의 환호 속에 오늘 우리 가운데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와 생명의 기쁨을 선물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사회가 혼탁하더라도, 기가 꺾이거나 낙담하지 맙시다. 교황님 말씀대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긴 터널과 같은 시간이 지나면 광명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 우리 군인들, 우리 국민들은 이를 잘 헤쳐 나갈 저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든든한 구세주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이 밤, 마음껏 기뻐하며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함께 경축합시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12)


2024년 주님 성탄 대축일

교구장사인

2024년 부활 메시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요한 20,1)


알렐루야. 알렐루야!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시어 돌무덤에 묻히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우리에게 빛과 구원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군종교구민 여러분께 부활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전해주신 평화의 선물이 분쟁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상처로 얼룩진 형제자매님들의 마음에도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요한 20,2)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와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리려고 무덤에 갔습니다. 용감하고 신심 깊은 여인들은 향유를 예수님 시신에 발라 드림으로 마지막 예를 갖추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무덤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이 도착했을 때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은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군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안타까움과 슬픔 속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 간절함에 감동되셨을까요? “마리아야!”(요한 20,1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녀를 부르십니다.

‘빈 무덤’의 목격과 증거는 우리 부활 신앙의 근간입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만약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분의 지상 33년의 삶, 특히 공생활 3년간의 말씀과 행적은 세기의 성현 중 한 분의 것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종 한계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인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증명된 것입니다.

볼 수 있고 증명된 사실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육신의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 신앙은 허황된 주장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설이 아닌 실재이며,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진리를 믿는 이들이며, 증인들입니다.



부활을 살기 위한 ‘줄탁동시(啐啄同時)’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부활을 ‘내가 사는 것’입니다.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어미 닭은 밖에서 쪼고, 병아리는 안에서 쪼며 서로 협동하여 일을 순조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피나는 영적 노력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영적인 것을 선택해 나가고, 어둠보단 빛으로 나아가고자 힘씀으로써, 현실 속에서 부활을 체험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루카 24,6)


‘줄탁동시’의 자세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천사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서 뵙게 될 것이다.’(마태 28,7 참조)라고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사실 이곳은 이방인들의 지역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갈릴래아 지방의 작은 마을 나자렛에서 30년을 지내셨고, 공생활 3년을 갈릴래아 호수를 근거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신 후, 갈릴래아로 나가시어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선포하시며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어부로 살아가던 이들을 포함하여 부르심을 받은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하실 정도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반대자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으시며 사명을 수행하신 곳이 ‘갈릴래아’입니다.

그러나 갈릴래아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랑이 싹튼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제자들과의 해후의 장소로 정하신 것 같습니다. 스승을 잃고 상심하여 방황하던 제자들 역시 스승님과 함께했던 지난 3년을 회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갈릴래아를 향해 발길을 옮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로 나아갑시다.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의 ‘갈릴래아’는 어디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자리입니까? 그 갈릴래아에는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갈릴래아와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함께 있습니까? 만일 나의 갈릴래아가 예수님의 갈릴래아와 멀어져 있다면 우리의 발길을 새로이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의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겨울의 맹추위 속에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새 생명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부패로 악취를 풍기는 무덤이 새 생명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빈 무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 천상 것을 추구하는 신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갈릴래아’를 자주 찾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인사를 전하며, 여러분의 가정과 부대에 새 생명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주님 부활 대축일

교구장사인

2024년 제57회 군인주일 담화문

군인주일 담화문


오늘은 제57회 군인 주일입니다. 감사하게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68년도에, 군인들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기 위한 ‘군인 주일’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군종신부들은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군인들의 영혼을 돌보며, 특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에 주력해 왔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군종신부의 사목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모든 주교님과 신부님,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기도를 바치시며 오천 원, 만 원의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신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젊음은 예수님과 세상을 위한 선물”



2023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YD) 파견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차기 개최지로 한국의 서울을 지명하셨습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최되는 세계청년대회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청년들의 신앙 부흥에 커다란 기폭제가 되리라 희망합니다.

교황님의 청년들에 대한 사랑은 지대합니다. 서울 WYD가 개최될 2027년에는 교황님께서 아흔을 넘기신 초고령의 연세가 되시겠지만, 그분은 평화의 사도로서 열정을 지니시고 한국 땅을 밟으실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지난 7월 파라과이에서 열린 청소년 사도직 지도자 회의에 보내신 메시지에서 ‘젊음이 예수님과 세상을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청년은 나라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수효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업과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느라 믿음 생활을 소홀히 합니다. 그리고 어떤 젊은이들은 아예 종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작은 교회라 할 수 있는 가정’에 조부모님이 계셔서 신앙을 전수하고 인간의 도리와 법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가 대세를 이룹니다. 신앙을 전수해 줄 곳도, 배울 곳도 점차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학교 역시 스승의 권위가 실추되어 지식 전달의 장소 정도로 여겨집니다. 전인적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가정과 학교, 종교 기능의 약화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허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 분단의 현실 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군대 조직과 군 복무는 개인의 인격과 신앙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순기능의 시간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의무 복무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은 보람을 지니고 2년 남짓한 시간을 통해 육체의 건강과 인간의 법도와 함께 살아나가는 방식을 체득하였습니다. 아울러 자율적인 종교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성찰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며 영적 성장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 확보 등 여러 이유로, 성당에 나오거나 특히 세례성사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수효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세상 끝까지 퍼뜨려라.”(이사 48,20)(48,20)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상황이 호전될 수 있겠습니까?

첫째, 기도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관계 맺음이기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부분입니다. 그분께 젊은이들을 봉헌하고 그들을 참삶의 길, 믿음의 길로 이끌어 주십사 항구히 기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을 변화시키고 사랑과 신앙의 길로 이끄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 오직 한 분이십니다. 미래의 주역인 젊은 병사들이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찰 수 있도록 ‘군인을 위한 기도’를 자주 바쳐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관심입니다.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장병들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여러분의 자녀, 친지, 친구들입니다. 군 생활은 인생에서 쓸모없는 시간이 아닌, 건전한 민주시민 육성과 참신앙인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병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과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불철주야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상을 보내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뜻한 시선과 관심으로 군대와 병사들을 보아주시고, 후원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셋째,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젊은이 신앙 부흥의 전환점이 되도록 관심을 갖고 힘쓰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군대는 젊은 초급 간부들과 병사들이 주축을 이룹니다. CBCK 신자 통계에 보면 청년들의 절대다수가 군인들입니다. 20∼25세 청년 영세자 인원은 10년 전 2만 7천여 명으로, 청년들의 80%가 군대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작년에는 4천 3백여 명의 영세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대로 나간다면 교회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신자임에도 그 자녀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세례는 받았지만, 학업을 핑계로 냉담하였던 병사들도 많이 봅니다. 이들을 다시금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WYD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아직 신앙이 없는 이들도 교회는 초대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피를 공급하는 군종교구”



군종신부들은 모든 병사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인성교육을 실시합니다. 아울러 미사와 성사 집전을 합니다. 일반 교구에 비해 교리교육 기간은 짧지만,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고,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제대 후에 각 교구, 각 본당으로 돌아갑니다. 군종교구에 남아있는 신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군종교구는 한국 천주교회에 젊은 피를 공급한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군종신부들은 전후방 각지를 돌며 사목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시편 33,5)



여러분의 많은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의지하며 힘을 내어 군 사목과 선교에 매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다시금 신자 여러분의 군종교구에 대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신 주님 안에 행복하시기를, 103명의 군종신부들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0월 13일

교구장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