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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성탄 메시지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이사 9,1)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의 가족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및 탄생 대축일을 맞아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 관계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및 탄생 대축일을 맞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감사와 찬미의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I


구약에서 미래에 오실 구세주에 대해 가장 상세히 기록한 부분이 이사야서 9장 1-5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와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라는 두 표현으로써 구세주의 오심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표현에 주목하자고 말씀드리는데, 이 두 표현은 사실 같은 내용을 조금 달리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백성들이 어둠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상태에 구세주께서 구원의 빛이 되어 오셨음을 말해줍니다.

이 표현은 당시의 어두운 정치 상황, 어두운 사회 상황, 어두운 경제 상황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 마음의 어두운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당시의 연약한 왕 아하스가 자신의 고문이었던 이사야 예언자가 믿음과 용기를 가질 것을 탄원했으나 이를 듣지 않고, 아시리아의 도움을 청함으로써 국가적 재앙을 초래했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여러 가지 어두운 상황들 가운데 무엇보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이 무너짐으로써 오는 어두운 상황을 이사야 예언자가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어두운 상황에 구세주께서 빛으로 오시어 인간 마음속의 어둠을 흩으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라는 말에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이사 9,2)

흥미롭게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마태오, 루카 두 복음사가들도 예수님께서 어두운 밤에 탄생하셨음을 말해줍니다. 마태오복음사가는 예수님 탄생의 현장 모습을 간단히 기록하고,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유대아 땅에 왔고 별의 인도가 끝난 베들레헴에서 기뻐하면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동방 박사들이 어두운 밤에 빛나는 별이 동방박사들을 인도했음을 암시하면서 그들이 기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루카 2,8)에게 천사가 예수님 탄생의 첫 소식을 전했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루카 2,9)고 기록함으로써, 역시 한 밤의 어둠 속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음을 말해주고 여기서도 소식 전달자 천사는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여기의 어둠은 물론 밤이라는 자연적인 어둠을 말하고 있지만, 어두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고도 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이 되어 오시어 인간의 어두운 마음 곧 죄와 삶의 고통으로 가득 찬 인간 마음을 환히 밝히시어, 어둠에서 밝음으로 인도하여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 성탄 강론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한 성 레오 대 교황의 성탄절 강론도 이 기쁨의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밤 우리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으니 기뻐합시다! 죽음의 두려움을 파괴하시고 영원한 약속들에 대한 기쁨을 선물로 주시는 한 생명이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인간의 죄들과 여러 가지 역경과 불행이 주는 고통으로 인해 오는 어둠을 파괴하시고, 우리 마음을 순수함과 희망으로 밝혀주시는 우리의 빛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없이 기뻐하면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해, 교만, 음행, 탐욕 그리고 이기심 같은 여러 죄들을 뉘우치고 통회하며 동시에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을 굳게 하도록 합시다.



II


예언자 이사야는 태어나실 구세주를 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 9,5) 한편 복음사가 루카는 천사의 말을 전한 탄생소식을 이렇게 전합니다.“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구약과 신약의 이 두 성경 구절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구세주가 누구이시고 어떤 분이신지를 명백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사야서 9장 5절이 기록한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입니다. 한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고 이 아기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태어남 곧 탄생”과 “주어짐”이라는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천사의 말을 인용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라고 기록하여 이사야 예언자의 기록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은 요한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라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 번째 표현인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라는 표현과 똑같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탄생을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죄로 인한 멸망에서 구하시고자 내어주신 사랑의 최고의 선물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주시어”는 단순한 탄생을 넘어서서 우리 구원을 위한 십자가 제물로까지 삼으셨 다는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III


형제자매 여러분,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시며 또한 우리의 “구원자”요,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사람이 되어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관상하면서 큰 기쁨 속에 성탄절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및 탄생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히 임하길 기도합니다.



2018년 예수 성탄 대축일

교구장사인

2019년 부활 메시지


“무덤에 갇히셨던 우리 임금님, 군사가 엄중하게 지키었건만, 장엄한 광채 속에 개선하시어, 죽음의 승리자로 부활하셨네.”




I


친애하는 군종교구 교구민 여러분, 이 부활찬미가가 말해주듯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우리 신앙의 중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기쁨과 감격 속에 경축하고 있습니다. 사흘 전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공경했던 스승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사형당하시던 모습을 목격한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은 안식일 다음 날 새벽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용감하게 찾아갔습니다. 땅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림으로써 사랑과 공경심의 마지막 표현을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신이 있어야 할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는 되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라서, 이 여인들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셨던 제자들을 찾아가시어 발현하셨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당신께 대한 신앙이 꺼져가고, 공동체의 삶도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처했던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당신이 부활하셨음을 알리심으로써, 그들의 신앙에 다시 불을 붙이시고 무너져가는 제자들의 공동체도 다시 일으키시어, 세상에 나아가 변함없이 그리고 열성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제자들 가운데 오시어 가운데에 서신 채, 당신이 평소에 늘 사용하신 인사말 “평화가 너희와 함께”를 큰 소리로 연속하여 언급하시고, 처음 발현 때 함께 있지 않았던 제자 토마스의 의심을 해소시키기 위해 두 번째로 나타나셨을 때에는 당신의 현존과 말씀만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라고 좀 어색한 요청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요구에 의심 많은 토마스는 외치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는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서 크게 외쳐야 할 신앙고백이 바로 사도 토마스가 고백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입니다. 사실 사도 토마스의 이 고백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과 영성의 요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사도의 이 고백은 “주님, 당신은 저의 주인이시고 저의 중심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오늘만이 아니고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면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토마스의 이 고백을 들으신 후 토마스에게 하신 다음 말씀은, 주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지금의 우리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데에 참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우리처럼 주님 승천 후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고 당시에 살던 이들 가운데서도 주님을 눈으로 보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이들이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을 때 그것은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II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무엇보다 그분이 참으로 하느님이시고 참으로 사람이시고 참으로 구원자이심을 증명해준 사건이며, 이는 동시에 우리 역시 죄를 통회하고 그분을 믿어 옛날의 육적인 내가 죽고 영적인 나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주님께서 언젠가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밤에 당신을 찾아온 의회 의원 니코데모에게 하신 다음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 3,5-7)

이 때문에, 우리 교회는 예로부터 부활 대축일을 맞을 때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곧 “위로부터 태어나는” 의미를 지닌 세례성사 예식을 베풀어오고 있습니다.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 세례가 지닌 심오한 의미를 이렇게 요약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그러므로 부활 대축일을 맞으면서, 이미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내가 과연 새로운 탄생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탄생, 새로운 삶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내가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당연히 그에게 사랑으로 응답하게 되듯이, 하느님의 사랑에 나는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사막의 성 안토니오 아빠스는 말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선호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훗날 성 베네딕토의 회칙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자세가 회개 생활의 가장 뚜렷한 표현이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듯,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분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때 자연히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도 성 요한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세상이 그분을 통해 살게 해주시며, 하느님의 사랑이 외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데에서 드러났다고 말씀하시면서(참조: 1요한 4,9-10),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사도 성 요한께서는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라고 하시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형제적 사랑 실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나에게 상처나 해를 크게 끼쳐 미워지고 복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상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 6,27-28)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아픔을 주는 이들이나 증오의 정도가 심해져 원수처럼 여겨지는 이들을 미워하고 저주하며 복수까지 하고 싶은 충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듭거듭 되새기면서, 원수같이 여겨지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에게 해를 주거나 복수하려 하지 말고,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는 도와주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복수하고 싶은 이에 대한 심판을 주님께 맡기도록 합시다. 우리는 악을 선(善)으로써 극복해야 합니다. 원수 사랑의 노력이 상대방의 거부나 나 자신의 역부족으로 벽에 부딪힌다 해도 거듭거듭 시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내 편에서 위선이 아닌 진정성으로, 오만이 아닌 겸손에서, 일시적으로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 노력을 하도록 합시다. 물론 나의 한계성을 인정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청하면서입니다. 우리의 이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 한없는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 노력 때문에 내 모습이 비참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버리고 비우는 순수한 상태인 것입니다. 사랑 실천에서 가장 힘든 원수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실천하도록 합시다. 특히 구약 성조 요셉이 신앙을 통해 발견한 하느님 사랑의 섭리 신비를 깨달으면서 원수 사랑의 길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III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함께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도록 합시다. 주님의 부활이 가져온 또 하나의 부활인 나의 새 생명, 새로운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욱더 깊게 하도록 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19년 주님 부활 대축일

교구장사인

2018년 제51회 군인주일 담화문

군인주일 담화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51회 군인 주일을 맞이하여 군의 복음화와 모든 군인들에 대한 봉사의 삶에 헌신하는 군종 사제, 남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선교사들과 함께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깊은 나라 사랑으로 조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는 장병들, 군 간부들 및 지휘관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드립니다. 또 군과 군 가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와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군종후원회 회원님들께도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기에, 현재 진행 중인 북미회담 및 남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에 실질적 성과를 거두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정치 지도자들을 움직이시어 ‘진정한 평화’라는 놀라운 축복의 결실을 맺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 기도와 함께, 저는 누구보다 강한 애국심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 군인들에게 감사드리면서, 우리 군인들이 변함없이 긴장된 자세로 나라를 지키는 사명에 충실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대들이 있어 우리가 안전합니다.”라는 칭송을 듣는 군인들이 되어주시길 희망합니다.

군종교구는 “군 복음화, 변함없는 열정으로”라는 사목표어 아래, 군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열정은 뜨거워질 수도 식을 수도 있기에, 어떤 중요한 목표를 가질 때에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상태를 자주 점검하면서 지속적인 열정을 지니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금년도 사목교서에서 사도 성 바오로의 다음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7-8) 이 사목교서에서 나 자신의 복음화와 모든 이의 복음화를 위해 변함없는 열정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복음화의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였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을 모르는 군인들과 군 가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게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군종 사제들과 군종 사목에 임하는 수녀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 신자들을 영적으로 잘 돌보아주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 가운데 첫 번째 것인 ‘하느님을 모르는 군인들과 군 가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특별히 젊은 장병들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간 저희 교구가 세례를 베푼 통계를 보면 연평균 24,000여 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 받은 군인들 가운데 95%가 젊은 장병들입니다. 우리 군종 사제 역시 군인이기에, 모든 군인들의 봉사자로서 모든 군인들을 찾아가 격려와 위로와 가르침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도움을 주고 있고 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특히 젊은 장병들의 영적인 아버지요 벗이요 동반자요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영혼 구원’의 사명감을 갖고 하느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군인들과 군 가족들에게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7-48)

군에서 복음을 선포하여 세례를 주는 데에는, 특히 군 세례자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기초훈련기간 장병들에게 세례를 주는 데에는 한 가지 크고도 지속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육군이든 해군이든 공군이든 5주간 혹은 6주간의 훈련기간을 이용해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는데, 사용할 수 있는 교리 시간이 4회 혹은 5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어떤 군종 사제들은 세례식 미사 때에도 교리 교육을 합니다. 이렇게 교리를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상태에서 세례를 주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도 군종 사제들도 이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데, 비록 교리교육 시간이 부족하지만 원하는 훈련병들에게 세례를 주는 쪽을 저희는 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 기회는 너무도 중요하다고 보며, 하느님께서는 우리 장병들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도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믿음을 저희는 갖고 있습니다. 변명으로 들릴지 몰라도, 복음서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께 대한 믿음을 보이는 병자들에게 병 치유 은총과 함께 영혼 구원의 은총까지도 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리 한 번도 가르치지 않으시고 당신을 믿는 병자들의 마음을 보시고 구원의 은혜까지 주신 것입니다. 저희 군종교구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4회 혹은 5회라는 짧으면서도 집중적인 교리, 곧 그리스도교 교리의 중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교생활, 수난, 십자가형으로 죽으심,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에 초점을 둔 교리서를 준비했고, 교리교육에 도움을 줄 시청각 자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복음화의 두 번째 모습인 기존의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일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승천하시기 직전 하신 일이 바로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시던 제자 베드로를 따로 부르시어 그에게 당신을 계승할 지상 최고목자로 임명하시면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차례나 하시고 베드로 사도가 “예”라고 답할 때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간청하고 명하신 일입니다(참조: 요한 21,15-18). 주님의 목자인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그 무엇보다 주님의 이 간청, 이 명령을 늘 유념하면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군종 사제들과 군종 사목에 임하는 수녀들은 이 “영적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면서 군 신자들이 성경 말씀, 기도, 성체성사를 가까이하는 삶, 그리고 형제적 친교의 생활에 보다 충실하도록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목방문을 하면서 장병들, 간부 및 지휘관 그리고 군 가족들이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필사하는 일에 노력하고 있음을 보고 큰 기쁨을 가집니다. 구원의 말씀, 진리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더욱더 충실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희 군종 신부님들의 경우, 기존 신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군 당국이 모든 군종 장교들에게 요구하는 일들, 예를 들면 종교를 초월하여 병사들을 방문하여 격려하고 위문하고 지도하는 일들을 수행해야 하고, 또 군종 신부 자신이 담당하는 군부대 지역이 매우 광범위하기에 시간을 많이 소모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군종 신부님들을 바쁘게 또 피곤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 군종 신부님들은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일에 기쁘게 정성을 다해 임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저는 저희 군종 신부님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국가의 경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인들의 복음화를 위해 변함없는 지원을 다시금 부탁드립니다. 군인 주일 51주년을 맞아 군 사목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교우 여러분의 영육 간의 건강을 빌고 국군 장병들, 군 간부와 지휘관들, 군 가족들 그리고 군종후원회 회원 여러분께도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2018년 10월 7일

교구장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