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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성탄 메시지


"영원한 천주성의 찬란한 광명,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오시네,

병들어 신음하는 만민 고치려, 구원의 문 되시려 찾아오시네.

천사들 합창소리 땅을 흔들고, 천상의 노랫소리 새 세상 알려,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 드리고, 우리게 평화기쁨 전해주시네.”

(성무일도서의 성탄대축일 독서기도 찬미가에서)

I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민 여러분, “오늘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으니 기뻐합시다. 죽음의 공포를 소멸하시고 영원한 약속으로 인해 기쁨을 부어주시는 생명께서 탄생하신 이날 슬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 기쁨의 참여에서 아무도 제외될 수 없으며 기뻐할 이유는 모두가 다 지니고 있습니다.” 라는 성 대 레오 교황님의 강론을 인용하면서, 구세주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 대 레오 교황님께서 “기뻐할 이유는 모두가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는데, 이는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어떤 좋은 일 때문에 느끼는 그런 기쁨을 초월하는 우리 구세주 탄생이 가져온 우리 공통의 ‘지극히 좋은 일’ 때문입니다. 그 ‘지극히 좋은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멸망으로 향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그 축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지극히 좋은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목이 두려워 밤에 당신을 찾아온 의회의원 니코데모와 대화하시는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4-16)

우리 죄인들이 죄의 용서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도록,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이 성탄의 중심이 되는 의미이며, 이 축복이 바로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줍니다. 저는 여기서 알기 쉽게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예수님께서는 앞의 인용문처럼 “외아들을 내주시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세상에 보내시다.’ 혹은 ‘태어나게 하시다.’는 뜻만이 아니고, 죄로 인해 멸망으로 향하는 우리 모두를 이 멸망의 불행에서 구출하여 영원한 생명이라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외아들을 수난과 죽음에 처할 수도 있게 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아들을 내주시어”라는 말씀 속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감동적으로 드러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II


참된 사랑은 몇 가지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사랑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좋은 것을 내어주게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내어주는 데에서 이 사랑의 좋은 모범이 드러나지요.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가 바로 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인을 너무도 사랑 하시어 당신 외아드님까지 영원한 생명을 위한 대속물로 그리고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또한 상대편을 위해 자신을 낮추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인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외아들이 고통받을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되게 낮추시었고, 그래서 번쩍이는 광채와 천둥 번개 속에 내려보내시지 않고, 한 인간 여인의 몸에 잉태하게 하시어 무력한 아기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낮춤’의 정도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낮춤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참으로 겸손하게 탄생케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탄생 소식을 세상의 왕이나 총독 같은 권력자에게 먼저 알리시지 않으시고, 외롭고 인정받지 못하고 고달프게 살아간, 한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신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또한 상대방을 풍요롭게 하고자 자신은 오히려 가난해지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성 바오로께서는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당신 외아드님이 여관방 하나 찾지 못하고 가축이 먹고 자는 외양간의 구유 위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탄생에서 어떤 특전도 찾지 않으셨기에 이 비참한 환경에서 외아들이 탄생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이셨던 풀톤 쉰 대주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양으로 하여금 땅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게 하시는 분께서, 어느 날 소와 당나귀의 입김을 필요로 하게 되실 줄을 세상의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사랑은 사랑의 가장 큰 장애물인 미움을 뒤로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게 해줍니다.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내어주심은 이 포용과 용서를 통해 우리 죄인이 새롭게 태어나 당신의 자녀가 되고 그래서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구민 여러분, 하느님의 이 참된 사랑과 무한한 사랑이 드러난 성탄 대축일을 맞으면서 크나큰 기쁨을 누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죄스러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외아들을 극단의 겸손과 가난 속에 태어나게 하신 하느님의 이 사랑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이 사랑을 본받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라고 외치듯 말씀하시는 사도 성 요한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도록 합시다.



2017년 예수 성탄 대축일

교구장사인

2017년 부활 메시지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 특별히 평화의 은혜 충만히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1


사랑하고 존경하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처형되시던 모습을 지켜보았던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안식일 다음 날 새벽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주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림으로써 사랑과 존경의 마지막 표현을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이 살아계실 때만이 아니고 죽으신 후에도 변함없이 주님께 충실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무덤에서 엄청난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시신이 있어야 할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 라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라서 기쁨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잠시 후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심으로써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만나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부터 교회 전례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기억하는 전례와 관련하여 “기념일”에서 “축일”로 격상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이 성녀의 삶이 우리 신앙에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복음의 중심으로 그리고 우리 믿음의 원천으로 보시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계십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1코린 15,3-6)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팔삭둥이 같은”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바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박해에 앞장섰던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능하고 학식이 풍부하고 열성에 넘쳤던 바오로를 사도들의 설교나 가르침으로는 개종시키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커스로 향하고 있는 그에게 나타나시어 하늘에서 직접 부르시는 기적을 통해서 바오로 사도를 개종의 길, 회개의 길로 이끄신 것 같습니다. 이 변화의 체험을 한 바오로 사도는 주님 부활 신앙의 위대한 선포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도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1코린 15,17)라고 외치듯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으면서 “예수님, 당신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사람이시며 우리 구원자이심을 증명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우리 믿음을 굳건히 하도록 합시다.



2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고통에서 영광으로”라는 변화의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여러 종류의 고통을 당합니다. 육신의 병이 주는 고통, 마음의 병이 주는 고통, 가족이 주는 고통, 사회가 주는 고통, 국가가 주는 고통, 세계가 주는 고통 등 많은 종류의 고통을 겪습니다. 고통은 밖에서 주로 오지만 내 안에서도 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치유를 청하고, 주님께서 자비로이 치유해주시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신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저는 얼마 전 광주대교구가 고흥군과 함께 만든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 받아 참석했습니다. 이 영화가 곧 개봉되면 우리 신자들이 많이 관람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영화 감상이 하나의 훌륭한 피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남 소록도에서 40년 넘게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돌보다가 2005년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두 간호사의 이야기입니다. 이 두 분은 이젠 우리 관심에서 멀어진 한센병으로 고통 받던 많은 환자와 그 자녀들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특징인 “섬김”의 자세로 헌신적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아침마다 우유를 준비하여 모든 환자와 그 자녀들에게 갖다 주고, 전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보호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환자들의 상처를 만지고 치료해주었으며, 때로는 몇 시간씩 걸리는 치료도 기쁘게 해 주었고, 늘 환자들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이분들의 간호활동과 애덕활동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이 겪던 육신의 고통만이 아니고 마음의 고통까지도 치유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봉사가 이제 더는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고, 2005년 11월 폐가 될까 싶어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은 채, 광주 대주교님께만 말씀드리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조차하기 싫을 정도의 정신적, 육신적 고통을 당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 지극히 사랑하고 신뢰했던 제자인 베드로의 떠나감과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함, 불의한 심판, 침 뱉음과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심, 머리에 가시나무관을 쓰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심, 무거운 십자가를 지심, 십자가에 못 박히심, 돌아가시기 전까지 세 시간 동안 못 박힌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심 등 참으로 혹독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류를 죄에서 구하시기 위해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임을 아시고, 이 고통을 받아드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마침내 부활의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변화인지요!



3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
우리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미 찬송 드리면서 “하느님,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을 굳게 믿나이다.”라고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고백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을 묵상하면서, 이 세상의 어떤 고통도 받아들이고 견디며, 고통 안에 숨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고통 후에 찾아오는 영광의 희망을 지니도록 합시다. 한 고통이 지나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고, 어떤 고통은 오랜 기간 심지어는 일생 동안 지속하는 것을 경험하지만, 미래에 올 영광, 특히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에 대한 희망 안에서 고통을 인내하고 고통에서 배우도록 합시다. “고통은 잠시이고 영광은 영원합니다.”라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도록 합시다.



2017년 예수 부활 대축일

교구장사인

2017년 제50회 군인주일 담화문

군인주일 담화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50회 군인 주일을 맞이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조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국군 장병들, 군 간부 및 지휘관들, 군종 사제들, 군종 사목에 종사하는 수녀님들, 군종 교구민들 그리고 이들의 사목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여러분께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드립니다.

군종교구는 올해 군인 주일 50주년을 맞이하여 “군(軍) 복음화, 새 열정으로”라는 사목 표어 아래, 군 선교를 시작했었던 때를 되돌아보면서, 군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열정을 갖고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사목교서에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복음 전파라는 지상 명령을 내리시어 온 세상에 나아가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신자 병사, 군 간부와 군 지휘관들은 자신의 동료 가운데 적어도 1명은 예비자 교리반으로 인도하는 노력을 해 줄 것을 강조했고, 기존 신자들에게는 재교육과 지속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특히 군에서 세례를 받아 아직 교리지식이 부족한 병사들을 위해 군의 각 본당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중심으로 ‘죄와 회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일곱 성사’, ‘성모님에 대한 공경심’, ‘교회에 대한 신앙’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5분 교리를 만들어 미사 후에 실시하고, 할 수 있으면 본당 단독으로 혹은 주변 군 본당과 합동으로 사순시기와 대림시기 피정을 실시하며, 이 두 전례 시기의 피정만이 아니라 별도의 피정 계획도 갖고, 성경 공부와 성경 읽고 쓰기를 성실히 실천하도록 권고했습니다. 한편, 저희 교구는 훈련 받는 군인들의 사정에 맞게 짧으면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중심을 두는 특화된 교리서 편찬을 추진 중인데, 금년 말까지 완성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군인 주일 50주년을 맞이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군선교의 역사는 군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와 부산, 마산 등으로 후송된 전상자들을 돌보는데 의료진과 간호진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메리놀회 수녀들을 비롯한 수녀들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또한, 거제도와 부산, 울산 등의 포로수용소에서 메리놀회 선교사 길 패트릭 신부와 임종국 신부,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선교와 활동으로 일찌감치 군의 역사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미 군종교구장과 캐롤 안 몬시뇰의 도움으로 군종제도가 1951년 2월 7일에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군 복음화의 서막을 시작하여 신부들이 군 소속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군사목을 돕기 위하여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에서 3,246만 원의 후원회비를 마련하여 군종신부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군종제도가 생겨나고 군종신부들이 활동하면서 1958년 서울대교구 박희봉 신부를 군종신부단장에 임명함으로써 군종신부단의 토대를 만들고, 1961년 주교회의로부터 정식으로 인준된 가톨릭 군종신부단이 탄생되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목이 시작되었으며 가장 어려운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 군사목이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한 번은 거쳐 가야 하는 곳이 군대이므로, 한국천주교회의 어떤 교구도 군의 복무기간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가, 각 교구마다 성직자들의 부족으로 인해 교구 내의 사목도 감당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군종신부단을 정식으로 인준해 준 것은 한국천주교회가 군사목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주교회의는 1959년도 정기총회에서 연중 1월의 첫째 주일을 ‘군목사업주일’로 제정하고 이날 전국 본당에서 군종신부 강론, 군종활동 지원을 위한 특별모금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군목사업주일은 1960년과 1961년 두 차례 시행되다가 이후에는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 협정으로 6·25 전쟁이 중단되자, 안달원 신부를 마지막으로 신부들이 소속 교구로 돌아가고 군사목이 공백 상태에 빠져 있다가, 5·16 군사혁명 이후 다시 신부들이 활동하며 군사목을 실시하였으나,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지원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형편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군종신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던 때였기에,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군 사목을 지속 할 수가 없었으므로 교회의 제도적인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군종신부단의 존폐론이 대두되던 1967년 초 군종신부단은 당시 군종신부단 총재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께 ‘군인 주일’의 제정을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1967년 5월 27일 주교회의는 ‘군인 주일’을 재정하고 ‘국군의 날’ 다음 주일을 군인 주일로 정하여 모금과 행사를 하도록 의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68년 9월 29일 42명의 군종신부들이 군인 주일을 맞아 전국의 성당들에서 강론을 하면서 군인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종신부단 총재 지학순 주교님은 그해 “가톨릭 시보” 9월 22일자를 통해 군종 신부들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을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습니다.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구원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군종신부가 한 사단에서 잘만 활동 할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1만 3천명의 장병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니 그 효과는 막대합니다. 이 1만 3천명은 전부가 다 현재 가장이거나 곧 가장이 될 사람들이니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거나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군종신부들은 이 사람들을 몇 백 명씩 집단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군종신부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군종신부들이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더 잘함으로써 군대 안에 사랑과 선의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습니다.”(가톨릭 시보 1968. 9. 22.)

군인이란, 우리의 아들이고 형이고 동생이며 친척이요 친구로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형제들입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사는 존재이지만, 부모, 형제, 벗 그리고 교회 목자들의 따뜻한 손길을 항상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형제들입니다. 군종신부는, 이들과 함께 군 생활을 하면서,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장병과 군 간부 및 지휘관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요 벗이고 가장 적절한 위로자이자 상담자가 되어주며, 영신적인 목자로서 비신자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삶의 표양과 하느님 말씀 선포와 기도로써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또 한편 신자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정성을 다해 영신적으로 돌보아 줍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라는 주님의 말씀을 또 하나의 양들인 군인들을 위해서 군인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군의 목자들입니다. 이래서 군인 주일은 무엇보다 바로 군의 목자들인 군종신부들을 도와 군의 복음화를 촉진하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군인 주일 50주년을 맞아, 이 시간에도 묵묵히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전후방 각지의 장병들과 군 지휘관들, 그리고 군종신부들과 군사목에 임하는 수녀님들 그리고 평신도 선교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시길 다시금 겸손히 요청 드리면서, 여러분이 보여주신 그동안의 기도와 격려와 모든 도움에 대에 깊이 감사드리고,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2017년 10월 1일

교구장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