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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의 해”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군종 교구민 모두에게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상처를 남긴 채 다행히 종식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기간 700만여 명의 생명이 격리병상에서 외로이 선종하였습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남은 자들의 슬픔은 치유되지 못한 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인 시노드 정신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에 고통받는 이들의 영육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서로에게 귀 기울여 경청하고, 대화함으로써 치유와 행복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세상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먼저 성찰하고 뉘우치며, ‘내 탓이오’를 외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2024년은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의 해’


군종교구는 7성사(七聖事)로 쇄신되는 7년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제가 교구장에 착좌하여 맞이한 첫해인 2022년도 표어는 ‘성체성사로 거듭나는 삶’이었습니다. 2023년도의 주제는 ‘선교의 열매, 세례성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2024년도 사목 목표는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고해성사는 죄로 인하여 단절된 ‘나/이웃/하느님’과의 화해입니다. 서로 간의 주고받은 상처가 치유되고, 빼앗겼던 평화를 되찾아 줍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


우리는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선하게 살기를 바라고 주님의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죄로부터 승리를 얻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신앙인들은 ‘죄/벌/악마’라는 단어를 멀리하려는 경향에 빠져들었습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계시듯이, 악령인 악마도 존재합니다. ‘선’을 가로막는 ‘악’도 산재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죄와 벌’을 강조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를 극복하는 ‘자비와 은총’입니다.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작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면 상호 간에 거리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보다 커다란 잘못을 범하게 되면 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국 서로의 관계에 단절이 발생합니다. 분열의 크기에 따라 진정한 참회와 속죄 없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죄로 인해 단절이 발생하고 그래서 하느님 앞에 자유로이 나서지 못하게 된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죄의 해소가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가톨릭 교리서 1426항 참조).

참회와 죄의 고백을 통하여 ‘죄’는 용서받고, ‘벌’은 자발적 보속을 통한 사랑의 멍에가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죄로 몰아넣어 고통을 가중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자애와 사랑이 가득한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 (요한 20,23)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직접 제자들에게 죄를 사해 주는 권한(赦罪權)을 부여하십니다. 예비자 교리교육 때에 어떤 분들은 ‘어떻게 인간인 사제가 같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여 구원을 줄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그 권한은 하느님만이 지니고 계시며, 사죄권을 교회에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 맡겨주신 죄 사함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제가 그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상담가를 방문하여 인간적 고뇌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지고 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면, 거룩한 직무를 위임받은 사제의 입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잃었던 평화와 상처의 치유를 얻는 고해성사야말로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3)


우리는 고해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직접 마주하고, 그 사랑을 체험합니다. 참회자의 올바른 준비에 따라 고해성사의 내적 평화와 기쁨은 그 크기가 달라집니다. 교리교육 시간에 배웠던 고해성사를 위한 5단계를 잠시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1) 성찰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 은혜스러웠던 일은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 부족하였던 것이나 이웃에게 아픔, 피해를 주었던 것이 있는지도 알아냅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서로에게 탓을 돌리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데서부터 분쟁과 불신이 생겨납니다. 상대방 안에 더 좋은 보화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가 그것을 지나치고 묵살하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통회

이는 ‘뉘우침이요, 아파함’입니다. ‘네 탓’ 공방에서 탈피하여 먼저 내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 상호 간의 불신과 논쟁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무 단서를 붙이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요한 8,1-11) 분열된 자아의 통합, 불신으로 깨어진 이웃과의 화해, 분쟁으로 얼룩진 세상의 아픔은, 바로 작은 자의 통회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3) 결심

새로운 삶으로 나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결심이 지속되지 못하고 허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인간의 부족함 위에 당신의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4) 고해

고해소에 들어와서 사제에게 고합니다. 어려서 교리 시간에 수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고해할 때는 인간인 사제 앞에서가 아닌, 마치 ‘큰 돌’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큰 돌’은 바로 하느님이시지요. 고해 후, 마음까지 후련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5) 보속

보속은 죄의 용서에 대한 징벌적 대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을 하느님께 발원하는 인격적 약속입니다. 보속으로 받은 기도 혹은 희생 행위는 다시 같은 죄에 떨어지지 않게 우리를 보호해 주는 참회의 행위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자비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힘으로 드러나며, 마음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고 용서를 통하여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먼저 고해성사 안에서 자비를 입었다면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자비로운 사랑의 명확한 표현이자, 그리스도인의 자발적인 의무입니다.



사랑하는 군종 교구민 여러분!


올 한해 고해성사 안에서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자비의 봉사자가 되도록 합시다. 해악한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사랑과 용서, 관용의 착한 바이러스입니다. 나 스스로가 먼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가정과 부대가 성화 될 때 우리 사회, 세상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지상 낙원이 될 것입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실천 사항


1. 잠들기 전, 자신의 하루의 삶을 성찰하기(영적 노트).

2. 먼저 화해의 손길 내밀기(SNS, 전화, 대면).

3. 매월 첫 목요일 ‘성시간’ 통하여 한 달을 성찰하기.

4. 군종교구민 판공성사 연중 3회 권고(부활 / 성탄 판공 + 성모승천대축일).



2023년 대림 제1주일에

교구장사인